1. 변호사님께서는 연수원 수료 후 다산에 합류하셔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다산에서 변호사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어 선배님의 여정과 닮아 있다는 점이 크게 와 닿습니다. 변호사님께서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 그리고 다산과 함께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정의감’을 품은 학생, 법조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변호사님은 어린 시절 모래 바닥에 “판사 000, 자신의 이름을 썼다는 일화를 본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었죠. 그 나이에 판사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구요. 전 딱히 법조인으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법조인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 잘 몰랐지요.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그런 건 안 가르쳐 줬거든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폭행 사건으로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이 집단적으로 수업 거부를 했을 때 ‘나름’ 주모자였던 걸 보면 정의감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감사하게도 고시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시 공부를 하여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그제서야 법조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들은 김칠준 변호사님의 강의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김칠준 변호사님께서 “지역 변호사의 역할과 지향”에 관한 강의를 오셨었습니다. 그때 ‘꼭 다산에 가야지’ 다짐까지는 아니지만, 무척 인상적이었고 김칠준 변호사님의 강연을 계기로 변호사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다산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제가 함께 일하고 싶은 곳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2. 변호사님께서는 소청심사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지방노동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 여러 기관의 고문변호사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오셨습니다. 이런 대외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와 그 과정에서 어떤 전문적 경험을 쌓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복잡다단한 행정 관련 분쟁을 법률가로서 깊이 고민하고 성실히 해결해왔습니다. 변호사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많은 수요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행정법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감사하게도 각종 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의 자문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습니다. 경기도는 도농복합지역으로 복잡 다양한 행정 관련 분쟁들이 많아서 행정법에 관심이 있는 법률가로서 열심히 고민하고 신나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사건들을 국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판단 주체로서 요구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함께 익히며 균형 잡힌 시각을 다져왔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있을 때는 고충처리 분야를 담당하였고 이때도 다양한 행정법 관련 갈등 상황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사건들은 행정 소송이나 행정심판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은데, 법이라는 이름으로 냉정하게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관점에서 어떻게든 행정의 불합리함을 시정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나 행정심판위원회의 경험도 저한테는 의미가 큽니다. 평소 의뢰인을 지지하고 대변하는 변호사로서가 아닌 판단의 주체가 되어 사건을 공정하게 보고자 노력하였으며 과정에서의 객관성과 공정성도 중요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3. 변호사님께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위원회 활동부터 여성단체 상담·지원, 경기도 인권위원회 등 다양한 자리에서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오셨습니다. 특별히 어떤 분야의 인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특별히 보람을 느끼셨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셨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성 인권과 노동 인권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주여성의 이혼소송 사건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권 보호 증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왔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데요. 그럴 정도로 인권 관련 활동을 해오지는 못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민변의 여성위원회 활동, 여성 단체에 대한 지원 등 업무를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지 못 하여 학위는 취득하지 못 하였지만 대학원에서 법여성학을 전공하기도 했고요. 또 대학 시절부터 노동법 분야도 늘 관심이 있었는데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노동 인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주여성에 대한 이혼 소송을 몇 차례 진행했습니다. 이주 여성들을 만나 보면 보통 한국인 남편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어리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한국 여성이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다행히 조정으로 잘 끝마칠 수 있었고, 그분들이 한국에서 자녀들과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실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4. 동료 변호사님과 직원분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이야말로 다산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변호사님께서 함께 일하면서 특히 다산 구성원의 팀워크가 빛을 발했던 일화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다산의 가장 큰 자산은 다른 변호사님들도 부러워하시는 우리 ‘직원분’들입니다. 다른 사무실 변호사님들이 다산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직원분들”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네요. 저희 직원분들은 보통 오래 재직하셔서 경험이 풍부하시고 급박한 업무들도 순식간에 잘 처리해주십니다. 저는 늘 제가 하는 일들을 직원분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제가 의외로(?) 허술한 점이 많아서 직원분들이 챙겨주실 때도 많습니다. 제가 문서 작업을 하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사무원이 들어오셔서 “변호사님, 재판 안 가세요?” 라고 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깜짝 놀라 재판에 겨우 다녀온 뒤로는 요새는 매일 아침 일정을 체크하여 알람을 맞춰놓고 있습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저희 변호사들 일정까지 꼼꼼하게 지원해주는 든든한 직원분들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손 변호사님 카카오톡 프로필에 회색 고양이 사진이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반려묘와 함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름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애교가 많아 보이던데 혹시 ‘개냥이’인가요? 바쁘신 업무 속에서 고양이와 보내시는 시간이 변호사님께 어떤 의미인지도 듣고 싶습니다.
오 사랑스러운 우리 “검이”를 자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집은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김씨여서 검이는 제 성을 따라 “손검이”라고 지었습니다. “김검이”보다 “손검이”가 이쁘지 않나요? 나이는 이제 3살 되었고 개냥이는 아니지만, 사람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특히 낯선 사람을요. 손님이 와서 대화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다리에 살짝 스치고 지나기도 합니다. 언제 한 번 검이 만나러 놀러 오세요. |